가끔은 이렇게/뽀시래기 텃밭 일기

비온 후, 텃밭

Jeeum 2022. 6. 8. 23:30

수요일 오후 늦게 텃밭으로 갔다. 연휴 이틀간 내린 비로 땅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수분이 모자라 틀대로 튼 땅이 그 많던 균열 하나 없이 푸근히 내려앉아 제 색깔을 띠고 있었다. 고탄력 메모리 폼을 밟는 듯한 감촉이 발 끝으로 느껴진다.

 

끝이 말라 짧게 잘라 두었던 부추들이 비를 맞고 탱탱하게 씩씩하게 다시 줄기를 뻗고 성큼 키도 커졌다. 붉은 땅을 배경으로 줄지어 선 초록들이 마치 소리를 듣는  달팽이관 속의 유모세포처럼 배열이 가지런하다.

 

 

적상추를 일부 베어낸 땅에 이번에는 청상추 씨앗을 뿌렸다. 수분을 머금어 보슬거리는 땅 속으로 가는 몸을 숨긴 씨앗들이 숨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장마가 오기 전 싹이 올라왔으면 좋겠다.

 

비를 듬뿍 맞은 청경채, 겨자채, 당근, 루콜라에는 작은 흙먼지 조차 씻겨 내려가 마치 새색시의 얼굴처럼 말간 표정을 하고 있다. 물이 모자란 탓에 잘 자라지 않던 청경채가 아직 어리지만 잘 자랐다. 몽땅 베어 냈다. 비닐봉지 가득 담고 나니 저녁거리로도 충분하고 친구들에게 나뉘주어도 될 듯하다.

 

 

오리와 가지의 줄기도 굵어졌다. 작은 오이가 달렸다. 아직 한참 더 자랄 수 있겠지만 저녁 용으로 하나 베어냈다. 지난 주에 흩뿌려둔 열무 싹이 났다. 덮어둔 천을 걷어내고 듬뿍 바람과 햇빛을 맞게 했다. 아직 여린 잎과 줄기는 건강하게 자랄 것이다. 열무가 자라면 오랜만에 열무 물김치를 담아볼 작정이다. 올여름 동안, 때로는 시원한 반찬으로 때론 시원한 열무 국수로 나의 여름을 기분 좋게 해 줄 것이다. 한쪽에 남은 땅에 엇갈이 배추씨도 뿌렸다. 이 역시 잘 자라면 김치를 담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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