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죽어도 여한은 크게 없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젊은 날을 뚫고 조금 번듯한 직업을 갖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나 자신만을 향해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을 넘어서니 늙고 힘없는 부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에겐 제대로 하지 못한 딸이었지만 남은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러고 나니 나도 나이가 들었다. 삶의 고비를 넘고, 나이의 마디를 넘어 이제 낼모레면 육십 대가 된다. 그러니 무슨 큰 미련이 있으랴.
굳이 욕심을 부린다면 좀더 건강한 시간을 갖고 싶다. 아직 건강한 시간 동안 경험하지 못한 스페인이나 영국 같은 새로운 문화 속에서 두근거리고 불안해하면서도 생생한 생활을 하고 싶다. 이런 욕심 외에는 크게 하고 싶은 것은 없다.
아니구나. 한가지 더. 책을 쓰고 싶다. 전공 서적이 아니라 내 이야기와 내 그림이 담긴 수필집 한 권. 자식 대신 글을 통해 내 자신을 남기고 싶은 작은 욕망 일지 모르지만 괜히 책은 한 권 남기고 가고 싶다. 특히 시윤에게 하고픈 얘기가 많다. 들려주고 싶은 얘기도 많다. 이것도 건강해야 가능한 일이므로 아직 죽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말과는 달리 나는 아직도 죽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자신의 말에 책임 지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수업과 쉬는 시간의 타이밍을 못맞추고 소변을 참았더니 금세 아랫배가 아팠다. 엄마를 닮아 방광염이 있다. 자주 화장실에 갔다. 아픈 엄마에게 신경 쓰느라 사실 수년간 제대로 된 건강검진을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금년 초 예약했던 건강검진도 예기치 않던 일로 취소가 되고, 다시 검진 예약을 하지 못한 채 하루 이틀 시간은 가서 벌써 10월 중순이다. 급한 마음에 다시 예약을 잡으니 11월 말이라야 가능하다고 한다.
약국에서 약을 먹고도 개운치 않은 느낌이 여전했다. 수업이 없는 틈을 빌려 산부인과 검진을 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정기적으로 다니던 병원이 더 이상 진료를 하지 않는 것 같아 고민하다 새로운 병원을 찾았다. 아침부터 종일 괜히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다. 어디가 나쁘다고 하면 어쩌지, 죽을병은 아니겠지. 괜한 걱정에 아랫배가 더 아프고 화장실은 더욱 자주 들락거렸다. 죽는 거 두렵지 않다고 큰소리를 치던 나는 어디로 갔나. 정말 어디가 나쁘면 그때부터 내 생활은 어떻게 되는 건가. 정말 심각한 결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육십을 앞에 두고, 마음은 요다지 쪼부라들어 있다. 그러면서 무슨 큰소리를 치고 사는 것인지.
오후 검진을 받고 왔다. 내 나이 또래의 친절한 의사의 설명이 따뜻했다. 여성이 나이가 들고 폐경이 오면 이렇게 저렇게 아프고 변화한다고 얘기해주었다. 나이 탓에 약해지고 좁아지긴 했으나 깨끗하고 건강하니 걱정을 크게 안해도 된다는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자궁경부암 결과는 문자로 알려준다고 한다. 진료실로 들어가기 전까지 와글와글 들끓었던 불안과 걱정은 어디로 갔을까. 검사로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는 데도 다행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실실 웃음이 나왔다. 집으로 와서 식탁 위에 있던 생크림 가득한 빵을 한 입 베어 무니 아침보다 훨씬 달콤하다. 무슨 이런 일이. 변덕스러운 사람 같으니...
존경하던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면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이라고 했다. 사람에게 있어 사는 것이 중요했다면 삶을 마무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것뿐이다. 살아가는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죽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왔으면 가는 것이니까. 어떻게 가야 할지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