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국민들의 밥상에 무슨 이야기를 올릴 것인가로 여야가 충돌했다. 낮아질 대로 낮아진 대통령 지지율 때문인지 여당과 대통령의 행보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추석 연휴 전날 대통령은 명동성당 무료급식소에서 앞치마를 입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자신이 먹을 음식도 해본 적 없을 듯한 사람이 700인분의 엄청난 김치찌개를 직접 끓여 무료 배식을 했다. 두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르고 푸근한 아버지의 표정을 짓는 사진을 보며 괜히 마음이 시렸다. 취임하고 몇 달 되지 않는 시점, 단임제 대통령 국가에서 대통령의 권력이 최고 정점을 찍어도 모자랄 시간에 낮아진 지지율 때문에(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음식을 만들고 배식을 하고 있는 대통령이 안쓰러웠다. 나의 오지랖인가.
저녁에는 TV 화면에 대통령 부부가 나와 국민들을 위한 추석 인사를 했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명절 만이라도 근심을 내려놓고 쉬라고 말했다. 감사한 말이다.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서민에 대한 안부도 적절했다. 이 또한 당연히 국가의 수반이 할 일이다. 당연하다. 화면에 비친 사람은 대통령만이 아니다. 말 한마디 않고 그저 서있을 뿐이지만 조용히 내조 하겠다던 부인도 옆에 있었다. 화면에 비치는 그녀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린다. 그 흔들림이 내게만 보일 리 없다. 하고픈 말이 많을 것 같은데 한마디 않고 그저 인사만 할 뿐이다.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일까. 이 역시 내겐 안쓰럽다. 미치겠다.
역대 우리 대통령 중 취임 전부터 부인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는 것도 처음이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에 신뢰라는 단어가 관련되어 있다면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에 그의 부인이 일조하고 있다.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학위논문 표절,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등을 보면 가족의 잘못된 행동 하나 인정하거나 처리하지 못하는 가장의 우유부단이. 나는 정말 안쓰럽다.
조금씩 반등하던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시 20%대로 떨어졌다. 대통령은 나라내에 없는데 말이다. 그는 부인을 동반하여 5박 7일의 일정으로 출국 중이었다. 영국에 가서 엘리자베스 여왕을 조문한다고 했다. 미국으로 가 UN 회의에 참석하여 연설을 하고 뉴욕에서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있다고 했다. 캐나다를 마지막으로 돌아온다고... 열일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힘든 일정이다. 대통령의 무게란 그런 것이 아니겠나. 힘드시겠지만 국위 선양하시고 오기를 기원했다. 근데 왜 상승세의 지지율이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인가.
영국 여왕의 조문을 못한 일. 나는 이해한다. 하고 싶지 않아 일정을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이해하고 싶다. 대통령이라고 모든 일이 즐겁고 기꺼운 것은 아닐테니... 어느 국가의 대통령 부부가 운동화를 신고 1킬로를 걸어 조문을 하는 사진을 보니 간지 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생전 운동이라곤 안 할 것 같은 우리 대통령이니 무리하실 필요는 없다. 괜찮다.
굴욕적인 한일간의 만남도 참을만했다. 전정권이 망가뜨린 한일 관계를 회복시키느라 비굴함도 참고 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찾아가서 만났다고 하니 그것도 이해해 줄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선택은 선택한 자의 몫이니까. 이후의 일에 대해 그가 책임지면 되는 것이니까.
이어 난데없는 사건이 터졌다. 깜짝 놀랐다. 벌떡 일어났다. 눈과 귀가 의심되어 듣고 또 들었다. 욕과 비속어가 들렸다. 그 말의 주인공이 우리 대통령이다. OMG. 대통령이 외교장관과 걸어가며 말한다. "이 **들"을 주어로 시작해 "쪽팔린다"를 서술어로 끝나는 복문 하나. 훈련된 내 귀에 치경 마찰음 /ㅅ/와 양순 폐쇄음 /ㅂ/가 정확하게 들린다. 세상에 이런 일이. 온갖 국가의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공간에서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평소 언어생활이 자연스레 배어 나온 것일까? 아!!! 정말 안쓰럽다.
취임 후 대통령은 도어 스텝핑을 시작했다. 검찰총장 출신인 그가 매일 출퇴근 길에 무수히 많은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왠지 어색 했지만 잘만 해낸다면 오히려 멋진 대통령의 모습이 될 수도 있으므로 괜찮은 시도였다. 대통령의 말은 국정이니까 도어 스텝핑을 통해 국가가 나갈 방향을 친근한 그의 언어를 통해 우리들이 쉽게 알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신선한 시도이므로 기대했다. 대통령의 주변에는 언제나 프로 이상의 참모진이 있을 것이고, 대통령의 권위를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 줄 테니까.
하지만 상체를 건들거리면 걷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기대감은 의구심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대통령이 말을 뗄 때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의 제스처와 말에는 무게감이 부족했다. 자연스러움을 기대했지만 자연스러운 그의 행동과 말에는 왠지 불안함이 따라다녔다. 말과 행동은 습관과 같은 것이어서 몸에 배어있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어색했다. 건들거림은 어느 순간 자제되기는 했지만 순발력과 통찰력이 떨어지는 말과 행동은 언제나 논란을 야기했다. 이래도 뭐라 하고 저래도 뭐라 하고 어려운 일이다. 대통령이라는 직업은. 그도 처음 해보는 대통령이라 시행착오가 많다는 것이다. 그것 또한 이해하고 싶지만 안쓰럽기 그지없다.
큰일을 하는 사람들의 세상에는 '이**"이라는 말과 '쪽팔린다"는 말이 예사인 걸까. 그런 말을 여사로 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들은 대체 뭐가 되는 것일까. 이런 말은 아직 성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은 초딩이나 중딩이 치기에 하는 말인 것 같은데... 참으로 복잡하다.
일은 벌어졌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 일은 비일비재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 해결하는 과정이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대통령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결자해지. 부적절한 말을 안했다고 치더라도 논란을 야기한 것은 대통령 본인이지 않은가. 만약 잘못을 했다면 스스로 사과하고, 그게 아니라면 논란을 야기한 것에 대한 해명도 직접 나서서 하는 것이 모양새가 맞지 않은가. 이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대통령실의 해명은 솔직히 유치찬란했다. 홍보수석은 그런 말을 할 리 없다고 국민들 보고 다시 들어보라 야단친다.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에게 향하는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다른 이슈를 만드느라 애를 쓰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팩트를 보도한 언론사의 행동을 꾸짖는다. 문제가 많으니 민영화하자는 소리까지 낸다. 심지어 오늘은 자막 조작이라는 피켓을 들고 떼를 지어 방송사로 몰려갔다. TV나 라디오 심지어 Y-tube 방송마다 등장해 철가면을 쓰고, 눈을 똑바로 뜨고, 당당하게 대통령을 숨기느라 분주하다. 애쓰느라 수고한다.
더욱이 여당 내의 분란을 지금과 같이 본격적으로 야기한 것은 누구인가. 그도 근무시간에 대통령이 보낸 카톡 문자 때문이 아닌가. 지금 대한민국은 오직 한 사람으로 인해 불필요한 정쟁, 논쟁과 소모에 빠져있다. 지지율을 의식해 김치찌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대통령, 틈이 날 때마자 자상한 코스프레마저 해야 하는 대통령. 총리도 모른다는 300억이 넘는 예산을 쓰겠다고 했다가 그저 취소하면 그만이라는 정부. 한일 외교에서 오지 말라는데 굳이 찾아가는 굴욕도 마다하지 않는 대통령. 가족의 명백한 부정이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지도자. 이런 지도자를 그저 지켜봐야 하는 2022년의 우리들, 어휴, 안쓰럽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