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2018). 아침의 피아노, 한겨레출판.
2022-80
죽음을 알고, 죽음을 맞는 철학자의 글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 알려준다. 나처럼 덜렁거리는 일상을 보내다 시간을 저버리는 사람에게 종착역이 어딘지 알려준다. 그의 글에 입을 뗄 말은 없다. 조용히 곱씹어 볼 뿐.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다. 여러 번 강의했고 여러 번 읽었던 텍스트. 그런데도 우연히 펼쳤을 때 문장들이 눈을 뜨면서 빛났다.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빛처럼. 그래도 첫 문장의 빛은 해맑은 아침 햇빛이다. "댈러웨이 부인은 꽃은 자기가 스스로 사겠다고 말했다."(47쪽)
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해충이 없다. 문을 열고 자는데도 모기에게 시달리지 않는다. 아침 물가에 앉으니 그 이유를 알겠다. 그건 여기가 쉼 없이 흘러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길-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51쪽)
긴 아침 산책
한 철을 살면서도 풀들은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81쪽) 아침부터 울컥했다. 부끄러웠다.
투병이라는 말을 옳지 않다. 손님은 잘 대접해서 보내야 한다고 옛사람들은 가르쳤다. 사랑이 그렇듯 병과도 잘 이별하는 일이 중요하다. 잘 헤어지고 잘 떠나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미워하지는 않지만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 있다. 그것들과의 불가능한 사랑이 필요하다.(90쪽)
누구에게나 몸 속의 타자가 있다. 환자는 그 타자가 먼저 눈을 뜨고 깨어난 사람이다. 먼저 깨어난 그 눈으로 생 속의 더 많고 깊은 것을 보고 읽고 기록하는 것-그것이 환자의 주체성이다.(100쪽)
이 책은 매일 조금씩 읽기로 했다. 그래야 할 것 같다. 그의 말은 짧지만 깊은 울림이 있다. 울림이 어떤 건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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