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2022). 하얼빈, 문학동네.
새해 첫 책.
김훈 작가의 최신작. '하얼빈'으로 시작해본다.
1908년 1월 7일, 대한제국의 황태자 이은의 명치 천황 접견으로 문장이 시작된다.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중근이 몰하고, 다음 날 3월 27일 중근에게 세례을 주어 인도했고 여순으로 가 마지막 고해성사까지 받은 신부 '빌렘'이 고향 신천 청계동 성당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들은 외친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망자에게 평안을 주소서
안중근의사의 마지막 2년. 만으로 31세에 의사는 대동아 공영의 선봉에 선 이토를 하얼빈에서 저격하여 죽이고, 여순감옥에서 처형당한다. 30세에 이런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 그저 시절 탓이었다 하기 어렵다. 그 시절 삶의 안녕만을 위해 비굴했던 삶이 더 많았을 테니. 영웅을 영웅으로서 존중하거나 기리는 일을 쉽다. 기념관을 만들고, 훈장을 수여하고, 기념사업을 하는 등등. 30세의 한 남성이 그런 선택을 했을 때의에 가졌을 법한 인간적 고민, 주저함, 갈등, 두려움, 불안. 작가 김훈은 그런 사람이 가지는 평범한 사실에 기초하여 의사의 마지막을 사실을 바탕으로 픽션을 가미해 소설 '하얼빈'을 우리에게 주었다.
생각해본다. 청년 중근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본다. 마지막 이년. 중근의 시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쇠붙이가 모여 길이 된 그 차가운 철도를 타고 해주에서 서울, 부산으로 가서 배를 타고 원산으로. 원산, 연추항을 거쳐 블라디보스톡으로 갔다.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길이 애초에 이토를 살해할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가 가는 길에 이토가 왔을 뿐이다.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결심했다. 이토가 사라져야 한다고. 그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하는것 맞는 거라고.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것이 자기여도 의미가 있다고. 어찌 시린 마음이 없었을까.
만약 지금과 같은 세상이었다면 어찌했을까. 최소한 이토에게 저항의 한마디는 하고 싶었겠지. 안하면 죽을 것 같았겠지. 야.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말이 안통할 때. 말이 말이 아닐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을 뭐가 될 수 있을까.
글로만 그를 생각한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소설은 내게 말한다. "안중근은 3월 26일에 죽었다." 우리가 그를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