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2015). 구의 증명, 은행나무.
2023-57
11/14~
최진영의 소설은 처음이다.
와! 모르겠다. 문장은 평범하고 잔잔한 물결을 타고 있는 듯한데. 문장이 담고 있는 구와 담의 얘기가 참담하다. 그들의 사랑이 질기고 잔인해서 안타깝고 어지럽다.
"어쩌라고?" 한마디 던지고 책을 던져 버리고 싶을 만큼 읽는 데 애가 쓰였다. 쉽게 읽힌다고 절대 쉽지 않은 세상의 얘기. 어지럽다. 힘들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어른에 방치된 아이들. 같은 처지의 아이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가까워진다. 가까워지다 못해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아이들의 사랑은 성인들의 사랑으로 진행되지만 사랑의 모습은 성장하지 못한다. 성장해 나갈 기미가 없다. 성장해 나갈 여력이 없다. 무작정 사랑하고 무작정 기다리고 무작정 의지한다. 그나마 이모가 이들의 곁에 잠시 있어 세상의 사랑을 알게 해주고, 성장하게 해준다. 그게 모두이다. 이들은 아마 세월이 천만년이 지나도 세상을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잔인한 사랑, 안타까운 사랑, 잔인한 세상, 말 안되는 세상 구조, 없이 태어난 인간이 잔인한 세상을 버티고 살아가기 위한 방법. 무엇을 증명하려는 걸까? 그들이 살아온 세상이 그저 잔인하다는 말로는 설명 불가능한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든 그런 세상.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세상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일까.
부모가 물려준 빛은 결국 구를 맞아죽게 만들고, 먼저 죽은 구를 보낼 수 없는 담은 구의 신체를 먹어버린다. 참담한 장면이다. 사람이 사람의 죽은 몸을 울면서 괴로워하면서 먹을 수밖에 없는 담. 그녀의 남은 생은 어떨지 걱정을 하면서 읽고 만다.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무엇을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작은 소설의 힘이 놀랍다.
길이 시작되는 곳에 고여있는 가로등 불빛을 봤다.
눈을 감기 전까지 그것을 보았다.
저거 되게 따뜻해 보이네.
그런 생각을 했다.
담이는 저기로 오겠네.
...... 저거 꼭 담이네.(16쪽)
애고 어른이고 우린 도통 아는 게 없네. 아런저런 생활의 지혜 같은 것은 기가 막히게 잘 알면서도, 자기 삶을 관통하는 아주 결정적인 사실은 모른 채로. 때로는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도 우리는 그럭저럭 살았던 것이다. 그런 비밀은 모르는 게 나은 때도 있다.(21쪽)
어차피 관심 없지 않았던가. 사람으로서 살아내려 할 때에도 물건 취급하지 않았는가. 그의 시간과 목숨에 값을 매기지 않는느가. 쉽게 쓰고 버리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하던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몸을 땅에 묻을 수도 불에 태울 수도 없다.(38쪽)
구는 엄청나구나. 구 대신 들어온 다른 것들이 터무니없이 옅고 가벼워서 구의 밀도를 대신하지 못했다. 구에 비하자면 친구나 학교 따위 너무도 시시했던 것이다.(51쪽)
내 마음은 항상 대기 중이었다. 오분, 삼십분, 한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심지어 구와 함께 있을 때에도 구를 기다리는 기분이었고 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내가 구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끊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65쪽)
걱정되지.
그마음이 제일 중요한거야. 그 마음을 까먹으면 안돼. 걱정하는 마음? 그게 있어야 세상에 흉한 짓 안하고 산다.(95쪽)
희망은 해롭다. 그것은 미래니까. 잡을 수 없으니까.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끌어들이니까. 신기루 같은 거니까. 이말을 왜 해주고 싶었나면, 나는 아무 희망 없이 살면서도 끝까지, 죽는 순간에도 어떻게든 살고 싶었는데. 그건 바로 담이 너 때문에. 희마없는 세상에선 살 수 있었지만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가 않아서 죽음은 너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느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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