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월 (2014). 상실의 시간들, 한겨례출판.
2023-67
12/23~
2023년 마지막 시간과 새해의 시간을 살짝 빌려 읽은 소설이다. 작년의 마지막 책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과 그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겪는 상실의 시간을 작가는 덤덤하면서도 끈기있게 311쪽의 소설로 남겼다. 엄마가 가시고 남은 자신이 엄마가 없는 혼란에서 벗어나고자 글을 썼다는 작가. 누군가를 잃어버리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읽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면 그것이 기쁨이고 보람이라고 말한다.
엄마가 가고 나는 홀가분했다. 엄마와 같이 있던 시간도 행복했으나 엄마가 가고 난 후 찾아온 일상도 엄마가 준 선물처럼 평안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 할까 싶은 생각이 들면 막막했다. 났으니 언젠가 멸해야 하는데 어떻게 멸할 수 있을지를 내가 선택할 수 없어 답답했다. 부디 부디 부디 남을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이기만을 기원했을 뿐이다. 어떤 모습이건 어떤 상태이건 부모와 같이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아픈 부모와 오래 산다는 것은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경험적으로 나는 안다. 그래서 엄마가 가셨을 때 엄마 스스로 적절한 때를 선택한 것 같은 생각이 들이 상실감이 크진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슬픔이 담긴 그리움이 울컥 차오르면 나도 모르게 그저 엉엉 울기만 했다. 그것 조차도 상실일지도 모를 슬픔이. 누군가의 죽음 뒤에 남겨준 누군가에게 이정도의 상실도 없다면 그것또한 다른 이름의 슬픔일지도.....
작가의 의도처럼 상실의 시간이 내게 마음의 위로 주진 않았다. 다만 작가의 글 속에서 석희와 은희와 소희가 겪는 엄마의 죽음과 남은 부모와 살아가는 모습이 지극히 평범한 나의 얘기를 닮아 있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먼저 가고, 엄마가 남았던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남은 아버지와 딸이 살아가는 일상이 훨씬 더 어려웠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나는 아무튼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소설을 읽었다.
엄마의 죽음은 남은 딸에게 삶을 생각하게 하나보다. 작가의 문장이 깊다. 조용조용 쓴 문장 같은 데 엄청나게 힘차다. 가만가만 꼭꼭 박히는 표현들이 많았다.
"삶을 지속한다는 건 끊임없이 낯설어지고, 새로워지고, 고독해지는 일이다. 형제도 자라서 타인이 되고, 타인이 만나서 가족이 되고, 그 가족은 다시 서로를 헤아리지 못하는 타인으로 변해 헤어진다. 만난 사람은 헤어진다 40년이나 알아온 엄마와 나도 이제 헤어졌다. 이별만이 인생이다(269쪽)."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비다. 올해는 비가 유난히 온다. 엄마가 마지막에 덮었던 홑이불을 태웠던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는데, 어쨰선지 그걸 불태우는 동안만 비가 그쳤었다. 심지어 바람이 먹구름을 흩어서 반짝 해가 났다. 변덕스러운 날씨의 우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자기는 이제 미련없이 잘 떠난다고, 너도 그만 가보라고 등을 떠밀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정말 기이한 일이란 없고, 그저 사람 마음이 기이한 걸 간절히 바라서 기이한 일들이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258쪽)"
"감탄으로 충분했다. 근사하고 멋진 것을 보면 아무도 '왜'라고 묻지 않는다.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는 사실만으로 해답이다."
"엄마는 원래 엄마로 태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를 만나, 우리를 낳아 키우느라고 엄마인 엄마가 되었다. 모든 존재엔 역사가 있다.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장소에서 이윽도 생겨나서 변화하고 소멸에 이르는 역사. 소멸한 듯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서 새로 시작되는 역사. 그러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과 시작되는 것에 관해.(82쪽)"
"평범한 사람이 체험하는 역사란 이런게 아닐까. 모순과 불합리의 회오리. 선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결정할 수 없는 거창한 것들에 둘러쌓여 어떻게든 살아남는, 살아가는 길.(230쪽)"
"노인이 되묜 누구나 볼살이 빠지고 치아도 줄어든다. 홀쭉하니 들어간 뺨과 오므라진 입술은 뾰죡한 턱을 만들어 새처럼 보이게 된다. 노인이 되면 누구나 고독한 얼굴이 된다.(48쪽)"
"장례식을 치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만감은 정말 만감이어서, 몇몇 단어로 요약하거나 정리할 수 없었다. 말은 수없이 변화하는 그 감정들의 표면 사이를 미끄러질 뿐이었다. 달리 표현할 말을 알지 못해서 슬프다고 말하지만, 그저 슬프다고 하기에는 슬픔이란 단어가 너무 피상적이고 얄팍하게 느껴진다.(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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