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맡겨진 소녀

Jeeum 2024. 4. 20. 11:26

클레어 키건(2023). 맡겨진 소녀 foster, 허진 역, 다산책방.

 

2024-20

4/20~ 

 

글을 읽기만 할뿐 쓰지 않은지 오래다. 그래서일까. 쓰는 것이 두렵다. 두려워서 일까? 작은 나의 블로그. 나의 공간이 황량하다. 따뜻하고 여유가 느껴지지 않는다. 허덕이다 너덜거린다. 아침부터 기분이 나쁘다.


 

키건의 아주 짧은 소설을 한숨에 읽어버렸다. 뭔가 허전해서 검색을 하다보니 키건의 문장은 섬세하다 못해 비밀스럽다는 평이 많았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많은 작업은 스스로의 노동 흔적을 제거하는 데 쓰인다고 했다. 모든 작품에서(단 4권의 책) 본질만이 남을 때까지 주변에 있는 것들을 덜어낸다고. 그렇다고 하면 책으로 남은 것들은 모두 작가가 자신의 시간을 갈아넣어 결국에 남고남은 본질이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 다시 읽는다.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25쪽)

 

"네, 이 집에 비밀은 없어요."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

"알겠어요. " 나는 울지 않을고 심호흡을 한다.

아주머니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 넌 너무 어려서 아직 모를 뿐이야."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아주머니가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다는 사실을 꺠닫고, 집으로 돌아가서 언제나처럼 모르는 일은 모르는 채로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다.(27쪽)

 

이제 태양이 기울어서 일렁이는 물결에 우리가 어떻게 비치는지 보여준다. 순간적으로 무서워진다. 나는 아까 이 집에 도착했을 떄처러 집시 아이 같은 내가 아니라, 지금처럼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뒤에서 아주머니가 지키고 서있는 내가 보일 떄까지 기다린다. 그런 다음 머그잔을 물에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온다. 물은 정말 시우너하고 꺠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30쪽)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오솔길을 따라 밭을 다시 지나올 때 내가 아주머니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없으면 아주머니는 분명 넘어질 것이다. 내가 없을 때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다가 평소에는 틀림없이 양동이를 두 개 가져왔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이런 기분을 또 언제 느꼈었는지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랬던 떄가 생각나지 않아서 슬프기도 하고 기억할 수 없어 행복하기도 하다.(31쪽)

 

모든 것은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 예전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된다.(33쪽)

 

나는 이 새로운 곳에서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겪어 본 적 있는 기분을 느끼며 잠에서 깬다. 킨셀라 아주머니는 나중에 침대시트를 벗길 때에야 알아차린다. 

지금당장 말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고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것을 끝내고 싶다. "매트리스가 낡아서 말이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이렇게 습기가 차지 뭐니. 항상 이런다니까. 널 여기다가 재우다니,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이었을까?"(36쪽)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길, 이 편안함이 끝나기를-축축한 침대에서 잠을 깨거나 무슨 실수를, 엄청난 절못을 저지르거나 뭔가를 꺠뜨리기를- 계속 기다리지만 하루하루가 그 전날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우리는 해가 뜰 때 일찌감치 일어나서 아침으로 달걀 요리와 토스트, 머멀레이드를 먹는다. 식사가 끝나면 킨셀라 아저씨는 모자를 쓰고 밭으로 나간다.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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