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2011). 끝나지 않은 노래, 한겨레출판사.
2025년 열네 번째 책
2/6~2/9
최진영의 소설을 시간의 역순으로 읽는다. 1월 금년의 첫 책으로 <이제야 언니에게>를 읽고 작가의 초기-혹은 이전-소설을 읽고 싶었다. 처음부터 작가는 이런 얘기를 썼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처음 읽었던 <구의 증명>, 그리고 <해가 지는 곳으로>, <오로라>, <일주일> <단 한 사람> 등등을 읽고, <이제야 언니에게>까지 읽었다. 대부분 벼랑 끝을 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나 우리들의 이야기. 독하고 아프고 절절해도 피할 수 없는 이야기. <끝나지 않는 노래>도 마찬가지.
두자, 수선과 봉선 그리고 은하와 동하
1927년생 두자와 두자의 쌍둥이 딸 수선과 봉선, 수선과 봉선의 아이들 은하와 동하. 3대에 걸친 여전히 끊나지 않는 여인들의 이야기. 제발 이젠 끝났으면 싶은 이야기. 이상한 결말이라 할지라도 해피엔딩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기 되기를 바라게 되는 검고, 짜고 독한 이야기.
두자의 시대는 그런 시대라고 한다해도 수선과 봉선의 시대도 또 그랬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은하와 동하는 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소설이기를 바랐지만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이 어찌 이렇게 잔인한지, 독한지, 복잡한지, 어려운지. 하루하루 그저 하루하루 사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우리들의 이야기. 나라고 다를 바 있겠냐 싶어 무덤덤해지려고 해도. 따뜻한 방에서 책 읽는 재미를 누리는 지금 대체 은하와 동하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안절부절못하고 횡설수설하고 있다. 참 답답하고 답답하다.
살아있는게 반갑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지도 않았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원치 않는 상태. 오늘을 살았으니 내 일고 살겠지. 눈뜨면 일할 것이고 배고프면 먹겠지. 숨소리처럼 떨어지지 않는 허기가 두자를 계속해서 살게 했다.(117쪽)
시간은 저수지의 썩은 물처럼 고여들었다. 엄마의 마음을 짐작만 하다가 결국 짐작조차 거부하고픈 날들이 덕지덕지 겹쳐졌다.(141쪽)
첫사랑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시내를 돌고 돌았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내 마음과 꼭 어울리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허름한 건물 입구에 들어가 어깨를 웅크리고 앉은 채 잔잔한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노래가 끝나자 디제이가 노래 제목과 가수를 알려주었다. 전람회의 <첫사랑>이었습니다. 레코드점으로 달려가 전람회의 앨범을 찾았다. 발매된 지 십 년 가까이 된 앨범이었다. 두 장을 사설 한 장은 포장해 달라고 하고 한 장은 비닐을 벗겨내 시디플레이어에 넣었다. 그 앨범을 들으며 오랫동안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밤하늘이 다홍빛이었다(중략) 어떻게 전해주지? 오거리에서 내려 교회 앞을 지나고 세탁소 앞을 지나고, 어두운 골목을 걸으며 생각했다. 그 애는 꼭 크리스마스이브에 내리는 함박눈 같고 나는 꼭 12월 28일쯤의 질척하고 거무튀튀한, 녹다만 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슬퍼졌다.(52쪽)
서로 더 많이 먹겠다고 싸우지도 않았다. 둘이 사이좋게 지내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대견하기도 했다. 부모 복도 남편 복도 자식복도 없는 지지리고 박복한 년이라고 스스로를 깔봤지만, 쌍둥이를 가만히 보다보면 자식복 없는 건 좀 더 두고 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쌍둥이 중 하나가 송편 하나를 집어 두자 입에 넣어 주었다. 어디서 이런 걸 배웠노, 두자는 떡을 받아 먹으며 중얼거렸다. (중략) 두자의 입에 떡을 넣어준 아이가 자기 동기의 입에도 떡을 넣어 주었다. 쌍둥이는 서로의 입에 음식 넣어주는 놀이를 하면 놀았다. 음식은 금방 바닥났다. 두자는 아이들의 놀이를 더 보고 싶은 마음에 말린 옥수수 두어 개를 급히 쪘다. 쌍둥이는 뜨거운 옥수수를 호호 불며 낱알을 하나씩 떼서 서로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 놀이에 끼고 싶어 두자도 입을 벌렸다. 두 아이가 동시에 낱알을 두자의 입에 넣었다. 입을 벌린 모습이 꼭 웃는 모습 같았다.(129쪽)
(태철이 다시 같이 살자는 말에) 싫진 않아도. 두자의 고개가 군홧발에 짓이겨진 노란 민들레처럼 푹 꺽였다. '믿을 수가 없응꼐.' 귀뚜라미가 울었다. 검게 탄 팔에 소름이 와륵 돋았다. 두자는 몸을 떨며 고개를 흔들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탁하고 더러운 연못에서 벗어나 깨끗한 물에 몸을 씻고 싶었다. 찬란한 햇살에 몸과 맘을 모두 말리고, 맑고 밝은 오솔길 따라 휘적휘적 끝없이, 걸어가고 싶었다.(132쪽)
엄마는 대부분 화만 냈다. 왜 그랬을까? 언제나 미간을 찡그리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모두가 자기를 위협이라도 하는 듯, 손에 칼이라고 쥐어주면 원 없이 휘두를 것처럼.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기에 수선은 엄마가 왜 그럴까라는 생각도 안 하고 살았다. 엄마는 처음부터, 그러니까 엄마 배속에서부터 그랬을 것 같았다. 태아 떄도, 갓난애일 때도, 미간을 찡그리고 거친 말만 내뱉으며 한 번도 웃지 않고 화만 냈을 것 같았다.(246쪽)
동하가 모래 바닥에 걸쭉한 침을 밷었다.
뺏긴 건 없어? 돈 안 뺏겼어?
... 더 이상 뺏을 게 없으니까.
동하가 웅얼거리며 말했다.
자존심을 뺏는 거야.(280쪽)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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