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중앙역

Jeeum 2025. 2. 22. 10:06

김혜진(2020). 중앙역, 문학동네.

2025년 열여섯 번째

2/17~2/22

 

칠곡 <나른한 서점>에 들렀다. 매우 추운 토요일 오후였다. 운동한 직후였기 때문일까. 평소와 다른 찬 음료를 주문했다. 실내가 서늘하여 금세 몸이 식었다. 역시 따뜻한 것이 필요했다. 혹시나 나의 위스리스트에 있는 책이 있을까 책방지기의 서가를 돌아다녔다. 식어버린 몸을 움츠리며 애써 돌아보지만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인가?

 

<김혜진> 작가의 이름과 중앙역이라는 <역>에 느낌이 왔다. 언제나 그렇듯 책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표지도 매우 중요하다. 표지가 쓸쓸하다. 신발을 신은 듯 아닌 듯, 앙상한 다리 그리고 키가 큰 남자와 앙상한 여자. 어쨌든 김혜진 작가의 작품이니까 한 권쯤 소장해도 될 것이다.

 

"스스로를 버린 두 사람이 서로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사랑인가 절망인가"라는 띠지의 문장은 소설에 대한 물음이었다. "다른 누군가를 꿈꿀 수 없는 가난한 처지가 서로를 유일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나." 앞 띠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인가 했다.

 


 

그들은 여기에 산다. 여기는 역 광장이다. 당연히 역에는 사람이 많다. 역을 오가는 사람들은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목적은 삶의 이유가 된다. 그러나 역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거리에 사는 사람들. 그들은 거리를 집이라 생각한다. 같은 거리에서 자주 만나고 부딪히는 사람들은 친구이며 가족이다. 물론 우리가 아는 형태는 아니다. 거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리를 떠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공생한다. 거리가 집인 사람들은 왜 떠나야 하냐고 한다. 떠나지만 다시 돌아온다. 반복적으로.

 

거리에서 병든 여자와 아직은 건강한 젊은 남자가 만났다. 남자는 젊어 아직 몸은 건강했지만 마음은 너덜거렸다. 남자의 몸은 체온이 필요했고, 목적이 필요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온 이유는 모르겠다. 이유가 뭐든 두 사람은 만났다. 사랑했다. 불온해보이고 불편해지는 육체의 사랑과 마음의 사랑을 나눈다. 남자는 병든 여자를 보살핀다. 돌본다. 쪽방에 사는 소라를 아빠가 돌보듯이. 건강한 남자는 병든 여자를 나름 최선을 다해 보살핀다. 돌봄이나 보살핌의 일반적 정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알뜰하게 보살핀다. 그렇다고 해결은 아니다. 거리의 남자가 하는 사랑은 그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그러는 동안 드러나지 않는 남자의 인생은 더욱 망가져 간다.

 

여자는 어느 세상이나 마찬가지이듯 몸을 팔아야 거리의 삶이 유지된다. 그냥 그럴 것 같다. 거리의 남자들도 욕구가 넘칠 것이고 남자들의 세상에서 가진 것 없이 엉켜 살아야 하는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도구로 삼는 것일지도. 여자는 스스로 남자에게 왔다. 그렇게 여자의 손짓으로 남자와의 어려운 관계가 시작된다. 

 

이것을 사랑이라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만남도 과정도 헤어짐도 보편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장소가 거리든 광장이든 사람은 똑같으니까. 소설을 소설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거나 지나치게 냉정해지면 망설임이 찾아든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나는 사람의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본다. 왜 이토록 외롭고 쓸쓸할까. 우리는 절망과 벗어나기 힘든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 더 큰 외롭고 쓸쓸하고 적막하고 두렵다. 그래서 곁에 누군가 있어주었으면 하고 누군가 곁에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려 하지만 오히려 더 외롭고 쓸쓸하고 절망적이 된다. 

 

이름 없는 주인공 남자와 여자는 지금부터 어떻게 될까. 작가의 상상이나 생각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나는 상상과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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