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난 디아스, 강동혁(2023). 트러스트. 문학동네.
2025년 열일곱 번째
3/1~3/16
오래도 읽었다. 내게 있어 소설은 초반부 배경에서 감을 잡고, 파동을 타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 책은 재밌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꽤 들었던 탓에 제대로 읽고 싶었는데 재밌다 혹은 흥미롭다 계속 읽고 싶다고 느끼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개학 이후 많아진 외부 일에 마음이 분주해진 탓도 있었다.
에르난 디아스의 소설은 처음이었다. 궁금하여 소개 문장을 살펴보니 <트러스트>가 두 번째 소설이란다. OMG. 또 한 명의 지니어스. (잘 모르지만) 특별한 구성의 얘기임에 분명했다.
1부 소설 속의 소설
2부 앤드류 베벨(소설 속 실존인물) 미완의 자서전(회고록)
3부 미완의 자서전을 쓴 아이다 파르텐자의 회고록 뒤의 얘기들
4부 그리고 발견된 밀드레드 베벨(베벨의 아내이자 소설속 또 따른 주인공)의 일기 '先物'
인간의 삶이 남겨둔 기록의 진위 여부는 누구의 기록인가에 따라 진실이 달라진다. 개별적 인간들은 누구나 많은 얘기를 갖고 있는 법. 그 얘기를 누가 궁금해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의 수에 따라 얘기는 전해지고 부풀려지고 왜곡된다. 하물며 1920년대 미국의 돈을 좌지우지했던 부자 베벨이라면, 4대를 내려온 부자 가문이라면 사람들이 혹할 얘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얘기를 하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며, 에르난 디아스는 소설 속 소설을 먼저 읽게 함으로써 식상할 수 부자 부부와 그 뒷얘기를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게 만들었다.
앤드류 베벨은 물려받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진 타고난 금수저이고, 그런 그가 자신의 조상을 미화시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자신보다 천재적이었던 병약한 아내 밀드레드의 도움으로 재산을 지키고 늘려나갔고 자신을 성공한 사람으로 조작할 수 있었지만 그런 사실을 세상에 대고 솔직하게 말하고 드러낼 수 있는 용기는 없는 사람이었다. 실은 이런 사람은 도처에 널려있다. 1920년대 미국에도 21세기 지금도.
마지막 밀드레드 기록은 역시 소설이나 영화같은 느낌이었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가지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기록의 쓸모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 요즘 소설 속에서나마 기록을 추구한 밀드레드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읽었다.
산들바람이 비교적 고용한 공기 중에 녹아들었다. 너무 푸르러서 하늘의 파란색을 배경으로 검게 보이는 숲의 꼭대기도 흔들리기를 멈추었다. 잠시 아무것도 몸부림치지 않았고 모든 것이 휴식을 취했다. 시간이 결국 목적지에 이른 것만 같았다.(115쪽)
뉴스란 다른 사람들이 가까운 과거에 내린 결정에 대해 언론이 말하는 방식일 뿐이었다.(119쪽)
에드워드는 충동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결코 틀라지 않는 직관력을 가지고 있었다.(167쪽)
권력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주위가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권위와 돈은 침묵으로 스스로를 둘러싸고 사람은 누군가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그들을 둘러싼 침묵의 무게로 측정할 수 있다.(267쪽)
그는 내가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을 때까지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도 나를 응시하던 파란 눈이 생각난다. 그는 내 눈동자에서 무언가를 뽑아내려 했거나, 눈동자를 통해 내 안에 무언가를 배치하려 했다(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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