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1998), 너무도 쓸쓸한 당신, 창비.
최근 인기가 많은 30대 젊은 작가들의 소설만 읽었다. 도서관 문학코너를 이리저리 해매며 눈으로 책을 스캔하다 박완서라는 이름의 책들이 주욱 꽃혀있는 서가에 잠시 섰다. 작가의 책 중에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것이 있나 싶었다. 그 중 하나를 들고 왔다.
장편인줄 알았더니 중단편 소설 모음이었다. 모두 10편이다. 소설가는 많은데 독자가 없다는 작가의 서문에서 괜히 미안함이 들었다.
내리 일주일 동안 모두 읽고 오늘 반납하려고 한다. 싸구려 눈을 가진 나도 역시 관록의 작가가 가진 구력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감탄을 하고 있다. 마지막 꽁트까지 총 10편의 소설은 주제도, 소재도 ,어휘도 문장도 완전 고급졌다. 젊은 작가의 글이 쉽게 통통거리는 통통배라면, 박완서 작가의 이 책은 모든 것을 갖춘 배,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그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 거대한 크루즈선 같았다.
문장공부하기 딱 좋았다. 어휘 공부도 즐거웠다. 사전을 뒤져가며 어휘 공부를 했다. 모처럼 내 메모노트가 그득해졌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요요하다
나부죽하다
번족하다
생급스럽다
사위스럽다
군데 군데 이런 낱말들이 자주 나왔다. 풍부한 부사와 형용사의 향연. 그래서 소설이 주는 느낌이 가슴 속으로 쑤욱 들어왔다. 생소하지만 이런 어휘들이 주는 느낌이 너무 찰떡같이 문장이나 상황에 맞아떨어져서 읽는 내내 가까운 우리들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어 몰입되지 않을 수 있었다. 거기에 경험 풍부한 노령의 작가가 풍기는 깊이에 재미까지 있다. 이도망간 독자들을 잡을 듯하다.
총 303쪽의 여백에 문장들이 펼쳐놓은 멋진 음식을 기분좋게 잘 먹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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