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 삶는 냄새는 구수하다. 실제 그 맛도 고소하다. 번데기를 삶을 때 나는 향기는 어린 날의 아련한 추억이다.
어릴 적 부모님은 자주 우리들을 데리고 수성못이나 동촌 유원지를 다니셨다. 특히 엄마는 야근을 마친 아버지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시장을 갔고, 극장을 갔다. 방천시장을 다녀오는 길에도 늘 극장을 거쳐 집으로 갔다. 수성 극장 앞에는 언제나 군것질거리를 파는 수레가 있었고, 그곳에는 언제나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모락모락 김이 오르던 번데기 양푼이 있었다.
때로 영화를 보기도 했던 수성극장 앞에서는 낡은 신문지를 원추형으로 좁게 접은 종이 고깔에 번데기를 담아주었다. 번데기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간식이었다. 번데기를 먹는 것이 좋았을까. 아님 엄마를 따라다니는 것이 좋았을까. 우리 형제들은 언제나 번데기를 기대하고 엄마를 따라다니곤 했었다.
그렇게 어린 날 부터 번데기는 우리들의 간식이었다. 내가 20대가 되어도 여전히 세간의 영화관 앞에는 솜사탕이나 번데기를 파는 수레가 있었다. 데이트를 할 때도 친구들과 몰려다닐 때도 간혹 번데기는 청춘들의 안주도 되고 간식도 되었다. 못 먹는 친구를 본 적이 없을 만큼 번데기는 된장만큼이나 친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보지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무심코 집어먹던 촉촉한 번데기의 주름진 몸에 난 작은 다리들을.
번데기의 몸의 다리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한 번도 유심히 쳐다보지 않던 그것에 수줍게 자리한 6개의 다리를 보고 나는 이상 번데기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깨끗한 고치 속에서 잠을 자던 생명체가 남긴 것으로 실을 잣고, 남은 흔적이 단백질 덩어리라고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것이 살아있던 생명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 그 다리는 말하고 있었다. 넌 지금 아무 생각 없이 생명을 먹는 것은 아니냐고.
사람에게 있어 다리, 곤충이나 생명체의 발이나 다리는 과연 무엇일까. 다리는 이동을 위한 것, 이동한다는 것은 자유의지. 결국 다리를 써서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 것을 증거하는 것일까.
인간의 아기는 돌이 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두 발로 걷기 시작한다. 말도 하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서툰 걸음이지만 엄마의 손길을 벗어나 자신의 두 발로 자신의 힘으로 중심을 잡는다. 걷기 시작하면 아기는 부모가 만들어주는 세상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 다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리는 살아 움직이는 것들만이 소유하는 것이다.
번데기는 애벌레가 나비나 나방과 같은 성충이 되기 전 스스로 고치에 갖혀 있는 상태의 생물을 말한다고 한다. 때문에 번데기는 죽은 상태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생명체가 되기 위해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변태 시키려는 준비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치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먹는 번데기는 누에나방의 고치로 명주 실을 뽑고 남은 것이다. 만약 인간이 고치에서 실을 뽑지 않았다면 그것들은 나방의 몸이 되어 훨훨 자유롭게 날아갔을 것이다.
종이 고깔 속의 번데기에서 본 작은 다리는 애처러웠다. 움츠리고 있어 아주 작았다. 그래서 그동안 보지 못했을 것이다. 갑자기 번데기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그 이유가 다리 때문이라고 했을 때 친구들이나 엄마는 이해해주지 않았다. 당시에는 나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깟 다리 때문에 번데기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유를 말할 수 있다. 그 날 본 번데기의 다리는 애처로운 작은 생명의 몸짓이었다고. 덩치가 큰 내가 아무리 이미 죽은 것이라도 그 작은 생명체를 먹지 않음으로써 생명의 존재를 인정해주어야 했다고.
여전히 번데기는 단백질 풍부한 영양간식이고 시장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식품이다. 번데기를 삶는 냄새도 여전히 구수하다. 그 냄새가 어린 날의 나 자신을 떠올리게 하고, 그리운 엄마를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값을 치르고 번데기를 사서 먹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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