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뽀시래기 텃밭 일기

가을 농사

Jeeum 2022. 8. 28. 22:40

처서가 지나고

모기 입이 삐뚤어지면

부지런한 농부들의 밭이 반듯반듯해진다.

초보 농부는 책과 유튜브에 의존해

하루 이틀 날을 보다 늦어버렸다.

 

부랴부랴 무씨를 뿌렸다.

혼자 뿌듯했다.

진짜 농부가 되어가는 양 혼자 하늘 보고 호기를 부렸다.

 

그러다가

옆 밭의 주인장에게 전화를 받았다.

 

"이번 주에는 배추 심어야 합니다."

"네, 네"

 

덕분에, 8월 마지막 주말 일정이 바뀌어버렸다.

 

 

아침 일찍 번개시장으로 가서 모종을 샀다.

30개만 달랬더니

50개를 사나 30개를 사나 가격이 거기서 거기라고

50개를 사란다.

"네" 하고 샀다.

 

 

가을 모종 가게는 풍성하다.

"이건 뭐에요?"

모종 가게 여사장님도 얼른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둘이서 마주 보고 웃어버렸다.

"왜 그거. 보라색....."

모종판 옆의 글자를 보고서야

"콜라비"임을 확인했다.

이것도 한 줄 주세요.

한 줄에 천 원.

 

"이건 뭐예요?"

"양배추"

"양배추도 지금 심어요?"

"가을에도 심지요."

"이것도 한 줄 주세요."

 

잘하지도 못하면서 욕심만 늘어서

잔뜩 사 온다.

심어두면 어찌 되겠지 하고...

완전 배짱이다.

 

가을이 다가온다.

아기 밤송이의 초록이 아장아장하다.

 

어제 줄 지워 둔 고랑에 비닐 멀칭을 한다.

내가 일하는 폼을 지켜보던 아저씨.

"이제 많이 잘하네."

"(크크) 덕분이잖아요. 쪼금 나아졌나요?"

(끄덕끄덕)

 

삽질하는 것을 보고

씨익 웃으며 다시 한마디.

"삽질도 잘하네."

(호호)

 

삽으로 땅을 고른다.

잠에서 깬 싱싱한 지렁이가 깜짝 놀란 듯

꿈틀거린다.

땅이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세 고랑에 비닐을 치고

모두 50포기의 배추를 심었다.

콜라비와 양배추도 심었다.

 

양수기의 물을 올려 부추와 쪽파에 물을

듬뿍 주고

며칠 전 뿌려둔 열무, 래디시와 루꼴라에도 촉촉하게 물을 주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의 농사일

엄청 힘이 드는데

뿌듯한 이건 뭐지?

자꾸 이런 게 생기니까

자꾸 농사를 짓게 된다.

 

배추 50포기

모두 잘 자라면 어쩌나?

걱정이다.

 

지인들에게 두 포기씩 나누어 줘야 할지도..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

 

푸른 하늘을 보니

가슴이 뻥 뚤린다.

 

 

 

 

 

 

 

'가끔은 이렇게 > 뽀시래기 텃밭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 모종심기  (0) 2023.03.20
2023년 첫 농사일  (0) 2023.03.18
땅콩 밖에  (0) 2022.07.10
여름 선물  (2) 2022.06.29
6월 텃밭에는  (2) 2022.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