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베란다 꽃밭은 돌아가신 엄마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다.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고 3년 차였던가. 집에서 혼자 계시다 넘어져서 고관절이 부러졌다. 수술을 받고 퇴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가 입원한 다음 나는 엄마 대신 집안 살림을 직접 전부 해야 했다. 그동안은 엄마가 하는 것을 돕는 정도로 했다. 원래 엄마의 것이었고, 엄마의 몫이었던 집안 살림이었다. 치매 초기에는 잘하든 못하든 원래 하는 일을 계속하셨다. 나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엄마도 할 수 있는 한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굳이 내가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사고가 났고, 엄마는 처음으로 집을 떠나 긴 병원생활을 했다. 엄마가 없는 동안 집안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집 베란다는 작지만 늘 꽃이 많았다. 큰 시장이든 골목시장이든 시장을 다녀오는 길이면 언제나 엄마는 작은 화분들을 하나씩 들고 왔다. 집 근처에 빈터라도 있으면 작은 호미 하나로 풍성한 밭을 만들곤 했던 엄마였다.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나서도 우리 집 베란다는 작은 밭이기도 했고, 꽃밭이기도 했다. 그만큼 엄마의 식물 사랑은 컸었고, 어쩌면 유일한 취미였을지도 모른다.
엄마 대신 집안 일을 하면서 가장 놀라워서 많이 울었던 장소도 베란다였다. 엄마의 병은 엄마의 이런 취미도 조금씩 앗아간 것이 분명했다. 베란다는 황량했고, 빈 화분들이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더러운 공간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건강할 때는 전혀 상상할 수 없던 공간이 되어있었다.
나는 엄마를 기쁘게 할 요량으로 베란다에 다시 꽃밭을 만들겠다고 계획했다. 그렇게 하면 왠지 엄마의 뇌가 예전처럼 반응해 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엄마랑 오래 같이 지내려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나마 죽지 않고 남아있는 식물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책을 샀다. 엄마가 키우던 식물의 이름을 그제사 하나씩 배우고 빈 화분에 꽃을 심고 물을 주고 가꾸었다. 식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꽃을 심고 물을 주고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정성을 다하면 결과는 돌아오는 법. 초보 가드너라도 들인 시간에 비례해서 베란다는 다시 조금씩 모습을 갖추어나갔다. 식물을 가꾸는 일은 생각보다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창문을 열어주고, 햇살을 보게 해 주고, 물을 주고 마음을 주는 일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생각만큼 내가 가꾼 베란다 꽃밭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렇게 나는 엄마 덕분에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엄마가 입원했던 병원의 옥상 정원에서 채송화 씨앗을 받아 오기도 하고, 주차장에서 병원으로 가는 길목 단위 농협의 작은 꽃밭에서 분꽃 씨앗을 갖고 오기도 했다. 씨앗들을 뿌려 싹이 나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다. 씨앗을 뿌리면 싹이 나고, 그 싹이 자라서 초록 초록한 잎들이 나고 꽃이 핀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제사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씨앗이 싹이 잎들이 꽃이 나기 위해서는 물과 햇빛과 바람과 영양과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식물의 성장과 돌봄이 부모가 자식을 낳아 키우는 과정과 같다고 느꼈다. 건강할 때 엄마는 이미 다커버린 자식 대신 강아지를 키우고, 베란다의 꽃들과 식물을 키우며 자신의 인생을 생각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시작한 베란다에서의 꽃과 식물 키우기는 엄마가 떠나버린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2021년 5월 지금 나의 베란다에서 가장 싱싱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트리안 하트>이다. 아마 이건 엄마가 사두었던 것이리라. 다 말라 죽을 것 같던 것에 물을 주니 다시 살아났었다. 그것을 큰 화분으로 옮겨 심었더니 얼마나 무성하게 싱싱하게 잘 자라든지. 지난 겨울 마른 가지를 아낌없이 잘라 주었다. 그랬더니 지금 이렇게 초록 초록하고 싱싱하게 잎을 내어 주었다. 트리안 하트를 보면 <강인한 생명력>이 생각난다. 가는 줄기에 작은 동그란 이파리들이 오밀조밀 달려 있는 것을 보면~~
그리고 덴드롱 꽃이다. 우리 집 <덴드롱>은 지난 해 자유님에게 얻은 것이다. 어느 날 들렀더니 자신의 베란다에 있던 것이라면서 작은 줄기 하나를 주셨다. 그것을 요 화분에 심었다. 작년에 두 번 화려하면서도 청초한 자신의 이름을 닮은 꽃을 보여 주었다. 겨우내 마른 가지로 가만히 움츠리고 있더니 봄의 햇살과 더불어 이렇게 다시 이쁜 꽃을 피워내고 있다. 덴드롱 화분에 클로버가 같이 피어나 있다. 사실 지금 나의 베란다에는 클로버가 여기저기 왕성하게 피어나 있다. 어디서 날라온 씨앗들인지 모르지만 어쨌튼... 덴드롱 꽃과 꽃의 마당에 핀 클로버의 컬래버레이션.... 함께 살아가는 진리를 알려준다고나 할까.^^
그리고 빈약하지만 슈크라멘이 꽃이 피어났다. 이것은 내가 받은 씨앗을 뿌려 이렇게 자라서 꽃을 피운 것이다. 식물원에서 전문가의 손길로 자란 꽃들은 보기에도 엄청나게 풍성하다. 식 집사 초보인 내 베란다의 슈크라멘 꽃은 소박하다. 하지만 그 어떤 화려한 꽃보다 사랑스러운 것은 내가 마음으로 주고 가꾸었기 때문일까? 원래 <소박하다>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화려하다> 보다 소박하다가 훨씬 듣기도 좋고 말하기도 좋다. 나는 언제나 소망한다. 소박한 곳이지만 우리 집은 언제나 햇살 와랑와랑하고, 따뜻한 마음들이 있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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