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어제 많은 비가 내렸다. 비 온 후 더욱 상쾌해진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나의 베란다 꽃밭에는 바람이 불면 무수히 많은 작은 이파리들이 알알이 알알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나부끼는 식물이 있다. 아디안텀(Adiantum)이다. 하나로 부족해서 또 하나를 사서 키우다 큰 화분으로 분갈이하고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다리고 있다. 가진 것에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말하는 입으로 식물에 자꾸 욕심을 내다보니 작은 화분들이 늘어가고 있다.
아디안텀을 처음 만난 것은 자유님의 가게에서였다. 꼼꼼하고 다정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가게에는 갈 때마다 새로운 초록들이 이쁘고 곱게 그리고 풍성하게 데코레이션 되어 있다. 어느 날, 햇살 바른 그녀의 창가에서 아디안텀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녀린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은행잎을 닮은 작은 이파리들이 촘촘하고 부드럽게 달려있었다. 작은 이파리들이 잔뜩 달려 있지만 무거 워보이 기는커녕 햇살을 받아 오히려 가볍고 경쾌해 보였다. 욕심이 나서 당장 입양해야 했다. 수정 꽃집 사장님께 부탁해 지난해 가을에 하나를 입양했다. 자유님의 아디안텀을 닮은 모습을 기대했지만 우리 집으로 온 녀석은 잘 자라지 못했다. 한 번의 겨울을 같이 났지만 제대로 키우는지 알 수 없었다.
문제는 수분이었다. 우리 집 베란다는 언제나 햇살이 와랑와랑 풍부한 곳이다. 햇살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분이 부족했다. 자유님은 매일 물을 준다고 했다. 아디안텀이 물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기에 흙이 마를 때를 기다려 물을 주었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햇살 바른 곳에 두고 이틀에 한번 듬뿍 물을 주었다. 그랬더니 이렇게 잘 자라고 있다.
우연히 <아디안텀 블루>라는 영화를 보았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여인이 아디안텀을 키운다. 그 영화에서 '아디안텀 블루'라는 낱말을 처음 들었다. 아디안텀은 한번 시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그냥 말라죽는다고 했다. 그걸 아이안텀 블루라고 한단다. 건강했던 주인공이 병을 진단받고 그저 죽어갔던 것처럼.
역시 아디안텀은 시들지 않도록 수분을 잘 맞추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을 좋아하는 고사리과이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이다. 매일 아침 하트 모양의 이파리가 달린 가지들을 천천히 어루만져본다. 베란다 가득 풀향기가 가득해진다. 그리고 마른 속가지 들은 과감히 잘라주고 물을 시원하게 준다. 우리 집의 두 개의 아디안텀은 아직 블루(우울)에 빠지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오래도록 영원히 함께 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장기간 집을 비워야 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이 <아디안텀>이다. 나 자신을 위해 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선택해서 데려온 식물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
지난 해, 보랏빛 꽃이 좋아 키웠던 바이올렛이 시들어 정리하면서 이파리 두 개를 꺾어 뿌리를 내렸었다. 봄에 컵에 옮겨 심어 이파리가 나길래 다시 작은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잎의 수가 늘어가고 넓어지고 있다. 이 중 하나를 오늘 분갈이했다. 좀 더 건강하게 자라도록. 똑같이 키워도 서로 다른 속도로 커가는 식물들. 마치 우리들이 걸어가는 속도를 닮지 않았는가. 엄마가 키워낸 우리 형제들 같지 않은가. 작은 화분이든 큰 화분이든 자신들의 속도에 맞게 건강하게 잘 자라면 그걸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바이올렛의 단단한 잎을 보면 뜻이 올곧아서 흴줄 모르는 사람이 생각난다. 튼실한 잎을 잘못 만지면 그저 상처가 나고 부러지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가끔은 부러질 지언 정 휘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때를 기다리며 몸을 낮추어야 하는 일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때가 언제인지를 알 수 있는 혜안인 것이다. 판단이 정확하려면 마음에 여백과 여지가 있어야 한다. 내게 여백과 여지를 주는 소중한 것들이 식물들이다. 언제나 고마운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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