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2023).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문학동네. 홍은주 역
2024-9
2/9~2/18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일단 읽어야 한다는 아주 약간의 의무감이 있다. 굳이 이유를 들라면. 너무 많은 사람이 읽기 때문에. 천만의 시민이 보았다는 영화를 나만 보지 않을 때 느끼는 기분과 닮은.
이제 1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긴 소설을 끝까지 읽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소설을 읽는 재미는 흥미로운 문장을 찾는 것이다. 흥미롭다는 의미는 다양한 의미를 포함한다. 보물찾기를 하듯 찾다보면 읽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마치 [책 한구석에 작은 글씨로 인쇄된 큰 의미없는 각주처럼 28쪽]의 각주를 찾듯......
소설에는 줄거리가 있다. 이 소설의 화자는 '나'다. 나에게는 '너(네)'가 있다. 나는 17, 너는 16. 지역 백일장에서 입상자로 만났다. 여름에 만나 사랑을 시작했다. 만나 걷는다. 손을 잡고 입을 맞춘다. 만나지 못하면 편지를 나눈다. 너는 꿈을 기록한다. 꿈속의 자신을 진짜 자신이라 믿는다. 나는 네가 들려주는 말(꿈) 속으로 간다. 꿈 속에는 도시가 있다.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인 그곳으로 가려면 자신의 그림자와 헤어져야 한다.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다. 거기서 나는 도서관의 '꿈을 읽는 이'가 된다. 너는 도서관의 유일한 사서이다.
소설은 지금 여기 현실 속의 나와 너의 얘기, 또 하나는 네가 들려준 말대로 만든 도시에서 살아가는 너와 내가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어쩌다 167쪽까지 일고 있지만 이른 아침 읽다보면 그저 잠이 온다. 그만큼 빨려드는 요소가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읽는다. 시작했으면 끝까지 일단 가야하는 내가 있다. 가끔 내가 느끼는 '현실'과 '꿈'이 읽힌다. 마치 내 얘기같은 느낌이 든다. 현실에 살지만 고통스럽고, 꿈은 달콤하지만 달콤한 만큼 희생이 필요한.
연휴 마지막 아침(어휴! 방학의 즐거움을 누려본 게 너무 멀다). 연휴가 이대로 며칠 더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아침독서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다. 은근히 잠이 왔지만 읽는다.
너와의 만남은 이제 끝났다. 약속된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끝났다. 나는 계속 너를 기다렸다. 일상을 살아냈다. 이제 중년이 되었다. 2부가 이렇게 시작됬다.
우연하게 유튜브에서 영상(@아키노트)을 하나 보았다. 하루키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그녀의 말을 고개를 갸웃거리며 듣다 일단 지금 읽는 하루키의 최신작을 그녀처럼 되진 않겠지만 꼼꼼히 정성을 들여 읽어보기로 했다. 왜 그녀는 그토록 무라카미의 작품을 좋아하는지.
오랜 직장을 그만둔 나는 빈둥거리며 그저 살고 있다. 그러다 오랫만에 꿈을 꾼다. 꿈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한다. 꿈을 기록한다는 것은 뭐지. 꿈이란 맥락도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그걸 어떻게 정리한다는 것인지...
2월 18일 다시 일요일. 오늘도 난 '도불벽'을 읽는다. 이제 574쪽 54절이다. 2부의 시작은 중년 남성의 자발적 백수 생활로 시작했다. 그는 시골 작은 마을 오래된 도서관의 관장이 된다. 내가 도서관에서 일을 하게 되는 과정에는 언제나 그의 소설이 그러하듯느낌과 직감(기시감)과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이어진다. 거기서 이미 죽은 전도서관장 고야스를 만나고, 도서관을 지키는 소에타와 일한다. 자신만이 아는 '그곳'으로 가고 싶어가는 특이한 소년 엘로 서브마린 소년 M도 만난다. 도서관 휴일이면 루틴이 된 카페의 여주인과 첫데이트를 했다.
서두에 얘기한 것 처럼 무라카미의 소설에 대단히 찬사를 보내지 못한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고 기괴하고 특이한 지점에서 매우 예민하게 이어나가는 스토리때문에. 그러나 그의 문장에는 존경을 보낸다. 이렇게 긴 소설을 문장을 이어서 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타고난 이야기꾼임에 틀림없다.
2부는 다소 편안한 일상에 대한 얘기여서 재밌게 봤다. '겨울이 길고 혹독한 고장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책을 많이 읽어요(406쪽)' 이라거나, '무언가와 무언가가 이어져 있다.' '그래서 최대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다. 머릿속을 텅 비워야 한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직감을-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향감각을-믿고 앞으로 나가는 수 밖에 없다(251쪽)' 과 같은 문장이 남아 있다.
남은 휴일 안에 남은 것을 다 읽고 싶은데.... 가능했으면 좋겠다. 읽어 두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다. 책에 욕심을 안내고 도서관의 책을 빌려 읽기로 했던 다짐이 다시 무너진다. 집에 책을 많이 채우지 않고자 했으나 다시 조금씩 책이 늘어나고 있다. 예정했던 서재 만들기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내품에 안긴 책들을 한 곳으로 모아두고 싶어지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역시 그의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761쪽을 모두 읽었다는 나의 성실함만 기억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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